라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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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와 유라시아 대륙 끝자락에 나타나는 툰드라 지대는 태양빛이 워낙 약해 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이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계절별 온도차가 극심한 곳으로 일부 지역에선 겨울과 여름 기온차가 60도 이상 벌어진다. 지표 30cm 이하 토지는 영구동토층을 형성하고, 표토는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극지 생명체들의 삶의 순환을 창조한다.

차갑고 황량하고 기이한. 툰드라는 당신의 취향과 가장 잘 어울리는 기후대입니다.

  • 빙산처럼 관조적인:
    툰드라 해안을 고요히 떠다니는 빙산처럼, 당신의 취향은 쿨하고 초연한 편. 기본적으로 당신은 남들이 어떤 책을 보는지 거의 관심이 없으며, 모든 책과 책에 대한 취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즐김.

  • 단단히 얼어붙은:
    동토층에 기반한 지대처럼 확고한 논리적/이성적 기반을 가진 스토리를 선호함. 기이한, 특이한 내용의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기본적인 논리와 상식을 벗어나선 안됨.

  • 얼았다 녹았다...:
    좋아하는 책에 대한 확실한 기준이 없거나, 이랬다 저랬다 함. 어떤 때는 비주류 성향의 픽션을 좋아하다가도, 어떤 때는 극히 대중적이고 트렌디한 베스트셀러에 빠지는 경우도 있음.

당신의 취향은 인터넷 출판 시대의 주류입니다. 고전적 의미의 출판 시장을 여성들(소녀 취향)이 장악하고 있다면, 현대 인터넷 시대에 온라인 출판 시장은 당신 취향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취향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작가들에 반응하리라 예상됩니다.

어슐러 르귄
달의 주기에 맞춰 '발정'하는 성의 주기
성의 주기는 평균 26일에서 28일이다. 21일 또는 22일 동안 각자는 성적으로 활동이 없는, 잠재상태의 '소머'이다. 18일째 되는 날 뇌하수체의 작용에 의해 호르몬 변화가 시작되며, 22일째 또는 23일째 되는 날 각자는 '케머', 즉 발정기에 들어간다. 케머 첫 단계(카르하이드 말로 '세헤르'라고 한다)에서 그들은 완전한 자웅동체를 유지한다. 성의 발현과 발정은 격리 상태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세헤르' 때 만일 혼자 있거나 케머 중인 다른 사람과 함께 있지 않으면 성적 결합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시기에는 성적 충동이 너무 강해서 그것이 그의 인격을 완전히 지배하며, 그 밖의 모든 충동을 억누른다. 케머 중인 파트너를 찾으면 호르몬 분비는 그들 중 한 사람이 남성호르몬 또는 여성 호르몬에 지배될 때까지 더욱 자극된다. 생식기는 팽창하거나 수축하며, 상대의 변화에 흥분한 파트너는 자동적으로 다른 성의 역할을 맡게 된다. 가끔 케머 상대에게 동일한 성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일은 매우 드물다.
- 어둠의 왼손 中

스타니스와프 렘
"이 과거의 망상이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의 모습을 하고 벌건 백주에 느닷없이 나타난다면? 자기에게 달라붙어 절대로 떨어지지도 않고 죽일 수도 없는 것이라면? 그럴 경우 자네라면 어떻게 하겠나? 도대체 어디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나?"
"어디서지?"
"바로 여기야. 솔라리스에서."
- 솔라리스 中

로저 젤라즈니
 냄새에 대해서도 민감해졌겠지만, 그것에 관해서는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상황에서 상상할 수 있는 구역질나는 냄새말고도,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사람 살이 썩어가는 냄새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악취가 오랫동안 풍겨왔던 것이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누군가가 그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위병이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안을 들여다볼 생각을 할 때까지, 도대체 몇 개의 빵, 몇 잔의 맛없는 스프가 손대지 않은 채로 그냥 썩어가야 하는 것일까?
- 앰버 연대기 中


10. 1. 17 새해 첫 포스팅 살아가는 이야기

#1.
한해가 보름 넘게 지나고서야 포스팅을 올린다.
늦었지만, 그리고 매우 소수이지만, 그나마 이 글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2010이 되길.
그 어떤 의미로든.

#2.
바쁜시절이긴 하나 바빠서 만은 아니다.

쓸데 없는 곳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음 때문이었다.

시간이 부족함은 언제나 필요한 시간이 부족함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필요 없는 곳에 너무 많은 시간을 사용함 때문에 온다는 것을
또다시 몸소 체험했지만,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으니 역시나 나도 한심한 사람.

#3.
갑작스레 감사가 된다.

항상 시간이 없다, 남들보다 환경이 부족하다 불평을 했지만
뒤돌아 보면 나는 감사할 것 뿐인 사람이다.

나는 내가 대한민국에서 꽤 괜찮은 대학을, 그것도 좋은 성적으로 다니며, 아이들 앞에서 앞으로의 인생을 상담해주고, 꽤 괘찮은 전문직종으로의 진입을 꿈꾸는 사람이라 착각하고 살지만.

기실 나는 봉제공장 재단 시다였다. 먼지나는 곳에서 간식을 먹고, 매일 새벽 한시에 라면을 먹으며 잠을 쫓곤, 야근을 시작하던 사람이었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적어도 나는, 마음만 먹는다면 하루 22시간 이상은 앉아서 공부할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피곤하면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잘 수 있지 않은가.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때의 나는, 하루 3시간 이상 앉아서 공부할 수 없었고
잠은 대부분 공장 사무실 한켠에 임시로 만들어 놓은 곳에서 잤다.
시멘트 바닥에 5cm 정도 이격시켜 나무를 올려놓곤, 그 위에 두꺼운 이불, 그 위에 전기장판, 그리고 다시 이불을 놓고
그 좁은 곳에서 남자 서넛이서 잠을 잤다.
냄세나고, 더럽고, 바닥엔 온갖 종류의 벌래들이 기억다니고, 모기도 많고, 건조하고, 춥고 
뒤돌아 보면 그런 공간이었지만
그런건 문제도 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저 등을 댈 곳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에는, 공강시간에 양지 바른 곳에 가서 벤치를 찾아 잠을 자기도 했다. 지금도 나는,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사람을 보면 함부로 말을 하지 못한다. 왠지 나를 보는 것 같다.)

꿈. 그딴 것은 사치에 불과했던 시절.

나는 기도했었다.
내 가족을 도와준다면, 내 가족을 이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면
내 인생을 걸고 신의 뜻에 따라 살겠다고.

그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정말 바닥 근처까지 내려갔단 우리 가족은(한때 9명에 달하는 우리 가족은 방 2개 - 그 집의 마루는 지금 형들고 함께 쓰는 내 방보다 작다 - 에서 살아야 했다.) 곧 심각한 곤경은 벗어날 수 있었다.
정말 놀라움의 연속으로.

아아.
사람이란게 가증스럽다. 나조차도 가증스럽다.
그 지독한 어려움에서 반발자국 벗어나자마자, 
그 다짐은, 그 기도는 잊었는지 내 입에서 나오는건 남들처럼 살고 싶다. 남들처럼 누리고 싶다라는 
그저 한심스러운 불평이었다.

모든 환경이 좋다면, 힘든 일도 할 만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일이 어디 그런가?
완벽한 환경에서 자기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매우 소수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 조차도 매우 희박한 경우에나 그런 일들이 가능할 것이고.
그런데도 바닥에서 기어올라온 나는
완벽한 환경을 요구한다.
하늘에서 내려보기엔, 얼마나 기가 찬 행동이었을까.

기억하자. 내 주위에 있는 사람은, 내가 꿈꾸던 곳에 있던 그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내 옆에 서있다는 것 만으로도 나는 감격에 겨워야 맞는 것이다. 불평할 건덕지가 없는 것이다.
내 주위에 있던 이들은 지금도 저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기억하고 감사하라.
나는, 내일 아침 내 인생이 끝난다 하더라도
그저 감사할 것 밖에 없음을
마음에 새겨놓자.

#4.
신이 존재한다면, 기적이 존재한다면
(물론 나는 이 둘을 모두 믿는다.)
나와 내 가족이 바로 그 증거일 것이다.

단순한 행운의 연속인가? 아니면 그저 열심히, 성실하게 산 댓가인가?

아마 나에게 그 말을 하는 당신 조차도, 그 말이 얼마나 허무하고 공허한 말인지는, 충분히 알고 있으리라 여긴다.

기적을 보지 못했다고?
감사하라.
많은 경우 기적을 체험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직 좌절이라는 두 글자가 얼마나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 매섭고 따뜻한 어두움의 마약을 맛보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5.
나의 가장 강한 점은
머리가 좋음은 아니다. 나는 별로 머리가 좋지 않다.
성실함도 아니다. 사실 나는 상당히 게으르다.

내 가장 큰 강점은
내 고통을 제 3자화 시켜볼 수 있고, 그럼으로서 그 고통을 감내하는 법을 배웠다는 점이다.
죽기 직전까지 힘들더라도, 아니, 죽을 정도의 고통이라도
나는 감당할 수 있다. 아니, 정확히는 있었다.

너무나도 차고 넘치는 요 몇달.
덕분에 나는 고통의 감각에 무뎌졌고,
그러기에 조금만 힘들어도 지쳐버린다.

매섭자. 날카롭자. 냉혹하자.

나는
훨씬 더 많은 힘든 일들 감당했었고, 감당할 수 있으며, 감당해 나갈 것이다.

그래.
누군가의 말마 따마
나는 독하다.
그 세 글자가
나를 가르키는 가장 정확한 단어일 지도 모르겠다.

#6.
새해 첫 포스팅은 자기 반성으로 시작하게 되는 구나.
그만큼이나 2009는 나에게 최악의 해였다.

2010.
다시는 작년과 같은 해를 만들어 내지 않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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